티스토리 뷰
목차
세금을 올리면 집주인들이 버티다 못해 매물을 내놓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저도 한때 그 믿음에 제 전세 재계약 시점을 통째로 걸었던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돌아온 건 급매 문자가 아니라, 집주인이 내민 반전세 계약서였습니다. 세금이 집주인을 압박하는 게 아니라, 세입자 월세로 그대로 전가된다는 걸 그제야 몸으로 배웠습니다.

공급 부족이 만드는 상승은 성격 자체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집값이 오르면 금리 인상이나 규제 강화로 잡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원인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금리나 투자 심리로 오른 가격은 그 원인이 바뀌면 멈춥니다. 그런데 순수한 공급 부족(Supply Shortage)이 원인일 때는 얘기가 다릅니다. 여기서 공급 부족이란, 실수요자가 필요로 하는 주택 수보다 실제 입주 가능한 주택 공급량이 절대적으로 적은 상태를 말합니다. 이 상태에서는 규제나 세금이 바뀌어도 가격이 멈추지 않습니다. 공급이 실제로 들어올 때까지요.
수도권 기준으로 시장을 안정시키려면 연간 20만 호 이상의 착공이 3년 이상, 실질적으로는 6년간 지속돼야 한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120만 호 규모의 공급이 필요하다는 계산인데,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이어진 규제 기조로 인해 신규 착공이 크게 줄었다는 건 통계가 보여주는 사실입니다. 출처: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3년 전국 주택 착공 실적은 전년 대비 큰 폭으로 감소했고, 그 공백은 2026~2029년 입주 물량 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재작년 전세 재계약을 앞두고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강화 소식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종부세란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주택 보유자에게 부과되는 세금으로, 다주택자의 매물 출회를 유도하는 목적으로 설계된 제도입니다. 부동산 앱을 매일 들여다보면서 급매 알림을 걸어두고 기다렸죠.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괜찮은 매물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파실 분들은 이미 다 팔고 정리한 상태였고, 남은 분들은 굳이 팔아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 공급 부족발 상승은 공급이 실제 시장에 들어올 때까지 외부 규제로 멈추지 않습니다
- 2022~2025년 착공 감소로 인해 2029년 전후 입주 물량 공백이 예고된 상황입니다
- 물건을 보유한 쪽은 전혀 급하지 않다는 것이 거래량 감소 속 가격 상승으로 그대로 나타납니다
강남 아파트가 '자산 키핑' 수단이 된 이유
강남 아파트 가격을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 Price-to-Income Ratio)로 분석하면 영원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PIR이란 가구의 연간 소득으로 주택을 구입하는 데 걸리는 기간을 나타내는 지표로, 일반적인 주거 접근성을 가늠하는 데 씁니다. 그런데 강남권 초고가 아파트는 PIR 기준을 아예 벗어난 자산 파킹(Asset Parking) 개념으로 움직입니다. 자산 파킹이란 돈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특정 자산에 자금을 묶어두는 행위를 말합니다. 거주 목적이 아니라 자산 보존을 위해 매입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다주택 보유 비율이라도 지역마다 행동 양식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관찰이 흥미롭습니다. 세종시 물건을 서울 거주자가 많이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규제가 나오자, 세종 물건부터 빠르게 시장에 나왔습니다. 이건 순수한 투자 수익 목적의 자산이었다는 걸 거래 데이터가 보여준 셈입니다. 반면 강남구와 서초구는 규제가 나와도 거래 자체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팔지 않는 게 전략이니까요. 출처: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강남구의 아파트 매매 회전율은 다른 자치구 대비 눈에 띄게 낮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이 부분이 가장 와닿았습니다. 재계약 당시 저는 집주인이 세금 부담 때문에 매물을 내놓거나 최소한 협상을 해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 시장이 강세인 상황에서 굳이 팔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세금은 임차인에게 전가하면 되는 구조였고, 오히려 집을 팔아 세금을 납부하느니 전월세를 올려서 몇 년을 버티는 게 훨씬 유리한 셈법이었죠.
가격이 비싸면 내려가고 싸면 오른다는 단순 논리도 이 시장에선 맞지 않습니다. 지방의 저가 아파트는 오르지 않고, 비싼 서울 아파트만 계속 오르는 현상이 이를 보여줍니다. 상승에는 상승의 원리가, 하락에는 하락의 원리가 따로 있고, 가격이 높다는 사실 자체가 하락의 이유가 되진 않는다는 겁니다.
가격이 안 오르면 월세 전가, 세입자에게 답이 없는 이유
세금 강화 정책이 나오면 매물이 쏟아질 거라는 게 일반적인 믿음이었지만, 제 경험상 이건 공급 여건이 받쳐주지 않으면 반대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집주인에게 세금 부담을 지우는 정책이 나왔을 때, 공급이 충분한 시장이라면 매물이 나옵니다. 그런데 공급이 부족한 시장에서는 그 세금이 전월세 전가(Rent Transfer)로 흡수됩니다. 전월세 전가란 임대인이 세금·관리비 등 비용 증가분을 임차인의 월세나 보증금 인상으로 넘기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 부분은 제가 몸으로 배웠습니다. 재계약 시점에 집주인은 보유세 부담이 커졌다며 월세를 얹은 반전세로 전환하자고 했습니다. 계산해보니 한 달 주거비가 수십만 원이 늘어나는 구조였습니다. 세금이 집주인의 매도를 압박할 거라고 믿고 기다렸던 시간 동안, 집값은 집값대로 오르고 제 월세 고지서까지 두꺼워진 셈이었습니다. 그때 친구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집주인은 급할 게 없는데, 너만 급한 게임을 하고 있었다고요.
풍선 효과(Balloon Effect)도 같은 원리로 작동합니다. 풍선 효과란 특정 지역이나 가격대를 규제했을 때 수요가 인근 비규제 지역이나 다른 가격대로 이동하는 현상입니다. 규제 지역이 묶이면 수요는 바로 옆 동네로 밀리고, 대출 한도를 낮추면 그 아래 가격대가 달아오릅니다. 지금 외곽 구축 아파트까지 가격이 올라오는 게 그 흐름입니다. 공급 자체가 부족한 수도권에서는 이 풍선을 끝까지 눌러야 할 이유가 없는 구조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걸러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6~7년 추가 상승, 수도권 끝까지 간다는 식의 전망은 공급 부족이 계속된다는 가정 위에 선 시나리오입니다. 3기 신도시 공급 속도나 경기 침체 같은 변수 하나가 어긋나면 그림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방향은 참고하되, 단정적인 확신 화법에 그대로 올라타는 건 주의해야 한다고 봅니다. 상승론자의 전망은 맞은 방향이 기억되고 빗나간 폭은 잊히기 쉬운 속성이 있으니까요.
- 세금 부담 강화 정책은 공급 부족 시장에서 매물 출회보다 전월세 전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 풍선 효과로 규제 지역 주변과 하위 가격대가 연쇄 상승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 6~7년 상승 전망은 공급 공백이 유지된다는 전제이므로, 방향은 참고하되 단정적 추종은 경계해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돌아보면 한 가지가 정리됩니다. 남의 매물이 싸게 나오길 기다리는 전략은 내 주거를 남의 사정에 맡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정책이든 세금이든, 그 힘이 집주인을 움직여 주길 기대하는 사이 시장은 그냥 제 방향대로 갔습니다. 기다림에도 근거가 있어야 하고, 그 근거가 공급 타임라인에 기반한 것인지 막연한 희망인지 스스로 구분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매수할 수 없다면, 최소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부터 계산해두는 게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가격이 내려오길 기다리는 동안 월세 명세서가 먼저 두꺼워질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이제 꽤 분명하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