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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승 종목이 200개도 안 될 때 하락 종목은 2,000개가 넘습니다. 코스피가 9,000선을 바라보는 동안 제 계좌는 30% 넘게 밀려 있었는데, 그 숫자를 처음 봤을 때 비로소 이상함의 정체가 뚜렷해졌습니다. 지수와 내 계좌가 이렇게까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정상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 이 글은 그 의심에서 시작합니다.

    코스피 쏠림 장세 (수급 구조, 포모 심리, 밸류에이션)
    코스피 쏠림 장세 (수급 구조, 포모 심리, 밸류에이션)

    수급 구조가 만든 기형 장세, 내 계좌는 왜 파란불이었나

    일반적으로 코스피가 오르면 시장 전반이 오른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올 봄부터 여름까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두 종목의 시가총액 비중이 코스피 전체의 60%까지 치솟으면서, 지수는 두 종목이 혼자 끌어올리는 구조가 됐습니다. 저는 실적이 괜찮다고 공부해서 담아뒀던 중소형주 두 개가 지수 상승과 반대로 야금야금 빠지는 걸 그냥 지켜봤어요. 처음엔 곧 따라오겠거니 했지만, 결국 30%가 넘게 밀렸습니다.

    이 왜곡을 만든 방아쇠 중 하나는 5월에 상장된 반도체 레버리지 ETF였습니다. 레버리지 ETF란 기초 지수 수익률의 두 배를 추종하도록 설계된 상품으로, 상승 시 수익이 증폭되는 만큼 하락 때 손실도 두 배로 커지는 구조입니다. 이 상품이 시장에 풀리자 코스닥 종목을 손절해서 반도체 레버리지로 갈아타는 자금이 쏟아졌고, 쏠림은 가속됐습니다. 연기금마저 외주 운용사에 맡긴 자금이 수익률 경쟁 때문에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로 집중되면서, 다른 섹터의 수급은 사실상 바닥이 났습니다.

    흥미로운 건 외국인 투자자들의 행동이었습니다.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 즉 신흥국 시장 내에서 한국 반도체 비중이 유독 크게 튀어오르자 외국인들은 5월과 6월 내내 팔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머징 마켓 펀드는 국가별 편입 비중을 일정 범위 안에 유지해야 하는데, 한국물이 너무 오르면 비중을 강제로 줄여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주가가 올라서 파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된 셈입니다. 실제로 한국거래소 통계를 보면 같은 기간 외국인 순매도가 이례적인 수준으로 지속됐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한국거래소).

    • 삼성전자·하이닉스 시총 비중 60% 돌파 → 지수는 두 종목이 독식
    • 레버리지 ETF 상장으로 코스닥 자금이 반도체로 이탈 가속
    • 이머징 마켓 비중 한도 초과 → 외국인, 수익 났어도 강제 매도
    • 상승 종목 200개 미만, 하락 종목 2,000개 초과 → 투기 시장 경고 수준
    요약: 지수 상승과 계좌 손실의 괴리는 개인 실력 문제가 아니라 시가총액 쏠림과 레버리지 ETF가 만든 수급 구조의 문제였습니다.

    포모 심리에 끌려간 내 손절, 가장 위험한 순간은 그때였다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란 남들은 다 수익을 내는데 나만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공포감을 뜻합니다. 저는 이게 개념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걸, 올해 직접 겪고서야 제대로 알았습니다. 회사 점심시간마다 반도체 레버리지로 며칠 만에 몇십 퍼센트를 벌었다는 옆자리 동료의 얘기를 들으면서, 축하보다 초조함이 먼저 올라오는 제 자신이 좀 한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손은 이미 매도 버튼을 찾고 있었어요.

    결국 공부해서 담아뒀던 종목을 손절하고 그 돈으로 반도체를 따라 샀습니다. 논리가 아니라 공포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확신이 없어서 판 주식은 싸게 팔았고, 남들이 다 산다는 이유로 산 주식은 고점에서 덥석 잡은 거죠. 하필 제가 갈아탄 직후부터 반도체가 하루에 5, 6%씩 출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침마다 시세창을 열 때 심장이 먼저 반응하는 게 스스로도 민망했습니다.

    더 뼈아팠던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제가 손절한 그 종목이 얼마 뒤 정책 기대감을 이유로 반등을 시작한 겁니다. 실적은 그대로였는데 돈의 방향이 바뀌니 주가가 움직이는 걸 보면서, 제가 판 건 주식이 아니라 제 인내심이었구나 싶었습니다. 손절해서 갈아탔다가 또 물리면 다시 손절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 저는 그때 이미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못 합니다. 대출까지 끌어다 넣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금융투자협회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신용융자 잔고는 수차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는데, 이 숫자가 의미하는 건 빚으로 버티는 개인이 그만큼 많다는 뜻입니다(출처: 금융투자협회).

    솔직히 이 경험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공부하고 들어간 투자보다 포모에 쫓겨 들어간 투자가 훨씬 더 취약하다는 걸 머리가 아니라 계좌로 배웠으니까요. 갈아탈 이유를 남의 계좌가 아니라 기업의 실적에서 찾아야 한다고, 지금도 매수 버튼 누르기 전에 한 번씩 되뇌고 있습니다.

    요약: 포모 심리에 끌려간 손절과 추격 매수는 타이밍도 논리도 모두 남의 것이었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제 계좌가 떠안았습니다.

    밸류에이션 저평가 논리, 한 번은 의심해 봐야 하는 이유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왜 이렇게 오르냐는 질문에 가장 자주 나오는 답이 밸류에이션 저평가입니다. PER(주가수익비율, Price Earnings Ratio)이란 현재 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숫자가 낮을수록 이익 대비 주가가 싸다는 의미입니다. 하이닉스가 PER 7배대, 삼성전자가 6배 중반이라는 건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11배대와 비교해 확실히 낮은 수치입니다. 저도 이 논리를 보면서 설득이 됐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가 좀 더 들여다보면서 걸렸던 부분이 있습니다. 반도체는 사이클 산업이라는 점입니다. 사이클 산업(Cyclical Industry)이란 경기 흐름이나 수요 사이클에 따라 이익이 크게 오르내리는 업종을 말합니다. 이런 업종은 이익이 정점에 달했을 때 오히려 PER이 낮아 보이는 함정이 있습니다. 분자인 주가가 이미 많이 올랐어도, 분모인 이익이 더 크게 늘면 PER 수치는 낮게 찍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도체 PER이 낮다는 게 저평가의 증거가 되려면, 이익이 앞으로도 지속 또는 성장할 수 있다는 전제가 함께 서야 합니다. 이 부분을 분리해서 검증하는 시각은 저평가 논리에서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 애플이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 칩 가격 문제를 제기한 사건을 단순한 노이즈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맥북 가격은 올렸지만 아이폰 가격은 그대로인 애플 입장에서는 메모리 가격 인상이 수익성을 직접 압박합니다. 그 압박을 완화하기 위해 중국 CXMT라는 카드를 꺼내 든 건 협상 전술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CXMT는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아직 양산하지 못하고 있고, DDR5 같은 첨단 제품도 우리나라 수준과는 격차가 큽니다. 하지만 이런 뉴스가 반복되면 칩플레이션, 즉 반도체 가격 상승이 전방 산업 이익을 갉아먹는다는 우려를 키울 수 있고, 하이퍼스케일러들의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시나리오와 맞물리면 수급에 부담이 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낙관론을 펴는 분들이 본인 포트폴리오에 반도체 비중이 크다고 직접 밝힐 때는, 그 분석이 아무리 정교해도 한 번은 이해충돌 가능성을 머릿속에 올려두고 들어야 합니다. 틀렸다는 얘기가 아니라, 근사하게 갈 거라는 전망과 기간·가격 조정 가능성은 동시에 존재한다는 걸 잊지 말자는 뜻입니다.

    • PER 저평가 논리는 이익 사이클 정점 여부를 함께 따져야 유효함
    • 애플의 CXMT 카드는 협상 전술에 가깝지만, 칩플레이션 우려 자체는 실재함
    • 하이퍼스케일러 현금흐름 둔화 전망은 HBM 수요 지속성에 직결되는 변수
    • 조선·방산·원전 등 비(非)반도체 섹터 실적도 개선 중이나 수급 부재로 주가 미반영
    요약: 밸류에이션 저평가 논리는 이익 사이클과 이해충돌 가능성을 함께 검증해야 비로소 투자 판단의 근거가 됩니다.

    정리하면 지금 시장의 문제는 반도체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너무 빠르게, 너무 좁은 곳으로만 돈이 쏠렸고, 그 과정에서 개인 투자자들의 판단력이 먼저 무너졌습니다. 총열이 과열되면 총알이 안 나가는 것처럼, 과부하가 걸린 수급은 좋은 뉴스에도 반응을 못 하는 구간이 옵니다. 제가 겪은 손절과 추격 매수가 딱 그 구간에 집중됐습니다.

    지금 당장 어떤 종목을 사거나 팔라는 얘기를 드리기엔 저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매수 버튼을 누르기 전에 이 결정이 기업의 실적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남의 계좌 수익률에서 나온 것인지 한 번만 확인하는 것, 그게 지금 장세에서 개인 투자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리스크 관리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1WlIXGQyF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