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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잘하는 일이 사라진다면, 그게 진짜 위기일까요? 몇 년 전 제가 다니던 콘텐츠 회사에서 후배 하나가 AI로 디자인 시안을 뽑아내기 시작했을 때, 솔직히 처음엔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뒤 그 후배는 같은 시간에 세 배의 결과물을 내고 있었고, 저는 회의실에서 멍하니 그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AI 시대의 직업 변화 (적응력, 국가자본주의, 공유자산)

    르네상스 화가와 사진기, 그리고 적응력

    '일자리가 AI에게 빼앗긴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좀 다르게 봅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비슷한 장면이 반복됩니다. 15~16세기 르네상스 화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현실을 정밀하게 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위대했던 이유도 그 정밀함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17세기에 사진술이 등장하자 왕족과 귀족들은 초상화 주문을 끊었고, 수많은 화가들이 생계를 잃었습니다. 그 충격 속에서 살아남은 것이 인상파(Impressionism)였습니다. 인상파란 빛의 변화와 찰나의 감각을 캔버스에 담아내려 한 새로운 미술 사조로, 사진이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감각과 해석을 전면에 내세운 방식입니다. 모네의 첫 인상파 작품이 평단에서 "발로 그려도 이보다 낫겠다"는 혹평을 받았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가 AI 앞에서 느끼는 당혹감과 정확히 겹칩니다.

    제가 그 후배를 보며 처음 느낀 건 위기감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면서 든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 후배가 틀린 게 아니라, 제가 17세기 화가처럼 기존 방식에 고착돼 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날 이후 저도 AI 도구들을 설치하고 퇴근 후 강의를 들으며 따라갔습니다. 처음엔 손에 안 익었지만, 몇 달 지나니 일하는 모양 자체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일이 없어진 게 아니라 일의 성격이 달라진 것이었습니다.

    이 변화의 속도와 충격을 가장 실감 나게 보여주는 지표가 있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인구추계에 따르면, 25년 후인 2049년에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51%가 65세 이상 초고령 인구가 됩니다(출처: 통계청). 노동 인구는 지금의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반면, 돌봄이 필요한 인구는 두 배로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이 상황에서 AI와 로봇이 노동력의 절반을 대체한다 해도, 오히려 사람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업이 아니라 노동력 부족이 현실적인 위협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많은 분들이 투자에 집착하는 이유도 이와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이건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20년 뒤를 직감적으로 계산한 생존 반응에 가깝습니다.

    핵심 포인트:

    • AI 도입으로 특정 직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적 노동의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습니다.
    • 역사적으로 기술 충격 이후에는 반드시 새로운 형태의 직업군이 출현했습니다.
    •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 방식에 고착될 때 도태가 시작됩니다.
    • 한국은 25년 뒤 노동 인구 급감이라는 구조적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전기는 공유자산이 됐다, AI도 그렇게 된다

    반도체 주식을 사면 AI 시대의 승자가 된다는 생각, 맞을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관점이 처음 소개됐을 때 꽤 신선하다고 느꼈습니다. AI의 미래를 전기의 역사에 빗댄 논리인데, 제가 직접 생각을 정리해보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에디슨이 전기를 상용화했을 때, 처음 쓰임새는 단 하나였습니다. 전구를 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전기는 이후 공장 모터에 들어갔고, 통신선을 타고 흘렀고, 결국 지금은 전기 자동차의 동력원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전기를 생산하는 전력회사가 지금 엄청난 이윤을 내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습니다. 전기는 공유 인프라(Public Infrastructure)가 됐기 때문입니다. 공유 인프라란 물, 도로, 통신처럼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기반 자산으로, 정부 규제와 공공성의 성격 때문에 특정 기업이 독점 이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AI 역시 이 경로를 걷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돈은 어디서 날까요. 전기가 공유자산이 된 이후, 그 위에서 반도체가 탄생했고, 그 위에서 인터넷이 열렸고, 그 위에서 앱 생태계가 수십조 원의 가치를 만들어냈습니다. AI가 인프라가 되고 나면, 그 위에서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새로운 서비스와 산업이 돈을 번다는 구조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AI 도구를 쓴다고 해서 업무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작업이 계속 생겨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쓸 수 있는 능력이 생기자 해야 할 일의 범위도 덩달아 커졌습니다.

    이 흐름에서 국가 차원의 대응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밸류체인(Value Chain)이란 원자재 조달부터 최종 소비자 납품까지 가치가 창출되는 단계적 연결 구조를 말합니다. HBM(고대역폭 메모리)처럼 AI 연산에 필수적인 부품을 쥐고 있다는 것은, 이 밸류체인에서 핵심 고리를 확보했다는 의미입니다. HBM이란 여러 개의 메모리 칩을 수직으로 쌓아 초고속으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로, 대형 AI 모델을 구동하는 데 필수적인 부품입니다. 한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통해 이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단기적 호재에 그치지 않습니다.

    리소그래피(Lithography) 장비, 즉 반도체 회로를 빛으로 새기는 초정밀 공정 장비는 현재 네덜란드 ASML이 독점에 가깝게 공급하고 있으며, 이 장비의 수출 통제가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 무기가 돼 있습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23년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 규모는 1,00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이 시장에서 EUV 노광 장비를 중심으로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출처: SEMI). 중국이 이 장비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체 기술 개발에 30년 로드맵을 세우고 경쟁 기업들 사이에서 인재와 기술을 순환시키며 속도를 내고 있다는 건, 10년 뒤의 공급망 판도를 지금과 전혀 다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AI가 첨단 산업을 장악할수록 오히려 자연, 먹거리, 정서적 충만감 같은 비첨단 영역의 가치가 커진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42.195km 마라톤을 2시간에 완주한 사람을 보고 열광하는 이유는, 자동차가 10분이면 같은 거리를 가도 그 행위가 인간이기 때문에 갖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의 경험 그 자체에 붙는 가치는 오히려 상승할 수 있다는 점, 개인적으로는 이 대목이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변화 앞에서 제일 위험한 순간은, 팔짱을 끼고 "그게 되겠어?" 하고 비웃을 때라는 걸 저는 그 후배를 통해 일찍 배웠습니다. 이제 AI가 전기처럼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속도는 예상보다 빠를 것입니다. 어설프더라도 지금 발을 담그는 쪽이, 지켜보다가 뒤늦게 따라가는 쪽보다 훨씬 낫습니다. 내가 하는 일의 방식이 바뀌는 것이지, 일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닐 테니까요.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NblWxnQmgO4&t=61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