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주가가 세 배 올랐는데 왜 골목 경기는 더 나빠졌을까요. 저도 지난주에 계좌 수익률 보며 동료들과 웃다가, 퇴근길에 십 년 단골 백반집 문에 붙은 폐업 안내문을 보고 그 자리에 멈춰 섰습니다. 사장님이 짐을 싸면서 하신 말씀이 재료값, 손님, 이자 이 세 가지가 한꺼번에 틀어졌다는 거였어요. 코스피 숫자와 골목 체감이 이렇게 다른 이유, 6월 25일 하루의 수급 흐름을 뜯어보면 생각보다 구체적인 답이 나옵니다.

    코스피와 실물경제 (연기금 리밸런싱, 댐 효과, 채권시장)
    코스피와 실물경제 (연기금 리밸런싱, 댐 효과, 채권시장)

    장중 3,688억의 비밀 — 연기금 리밸런싱과 댐 효과

    6월 25일 코스피가 5% 넘게 오른 날, 종가와 수급 합계만 보면 마이크론 실적 덕분이라는 한 줄로 정리됩니다. 그런데 제가 장중 시간대별 흐름을 처음 들여다봤을 때는 꽤 다른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오전 9시 반에 갭 상승 분위기가 식으면서 지수가 꺾이자, 연기금이 약 3,688억 원어치를 순매수하며 방향성을 바꿨습니다. 이를 추종하는 알고리즘 매수가 붙으면서 지수가 다시 올랐고, 오후 2시 반에 9,000선을 넘는 고점을 찍었습니다. 그 뒤 단 한 시간 만에 연기금은 그 물량을 모두 정리해 -25억 원 순매도로 마감했습니다. 저 같은 개미는 종가만 봤는데, 실제로는 장중에 완전히 다른 거래가 있었던 셈이죠.

    이 흐름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가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작년 연말 기준 대비 초과 보유 주식이 최대 260조 원에 달하고,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최소 50조 원에서 최대 140조 원을 팔아야 리밸런싱(rebalancing)이 완료됩니다. 여기서 리밸런싱이란 자산 배분 비율이 목표치에서 벗어났을 때 이를 다시 맞추는 작업으로, 쉽게 말해 주식 비중이 너무 높아졌으니 일부를 팔아서 채권 등으로 돌려놓는 과정입니다. 6월 22일에 1조 원 매도 기사가 나오자 코스피가 역대 다섯 번째 하락률인 9.99%를 기록했을 정도로, 시장은 이 움직임에 극도로 민감합니다.

    그렇다면 연기금 입장에서는 어떤 선택이 합리적일까요. 조용히 팔면 주가가 급락하고, 그렇다고 팔지 않으면 채권시장이 계속 마른다는 딜레마입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이 오늘 같은 날처럼 지수를 먼저 들어올린 뒤 고점에서 매도하는 방식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물론 이것은 하루치 수급 데이터에 기반한 추정이고, 앞으로 이 패턴이 실제로 반복되는지를 지켜봐야 단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시각을 가진 분들도 있고,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더 큰 그림에서 보면 지금 한국에는 이른바 댐 효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외국인은 상반기에만 약 120조 원어치 주식을 팔고 달러로 환전해 빠져나갔고(출처: 한국은행), 그 자리를 국내 개인과 기관이 채웠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외국인 연간 순매도가 43조 원이었다는 점과 비교하면 이번 규모가 얼마나 이례적인지 실감이 납니다. 문제는 그 돈이 주식시장 안에 갇혀서 실물로 흐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저도 솔직히 올해 십 년 넘은 냉장고를 바꾸려고 모아둔 돈을 슬그머니 증권 계좌로 옮겼습니다. 외식도 줄이고 여름휴가 예산도 깎았고요. 취업 준비 중인 조카가 채용 공고 자체가 줄었다고 한숨 쉬는 것도 이 맥락과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 6월 25일 연기금 장중 순매수 약 3,688억 원 → 고점 이후 한 시간 내 전량 매도 → 종가 -25억 원 순매도 마감
    • 국민연금 초과 보유 주식 최대 260조 원, 매도 필요 추정치 50~140조 원 (언론 보도 기반 추정치)
    • 외국인 상반기 순매도 약 120조 원 — 2008년 연간 43조 원 대비 약 3배 수준
    • 신용융자 잔고 39조 4천억 원 — 한국은행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경고
    • 한국 10년물 국채 금리 작년 5월 2.7% → 현재 4.1% 상승, 같은 기간 미국은 4.4% 동일
    요약: 연기금의 장중 매수·고점 매도 패턴은 리밸런싱 과정에서 반복될 가능성이 있으며, 외국인이 빠진 자리를 국내 자금이 메우는 댐 효과가 실물 경기 침체와 금리 상승을 동시에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코스피 1만이 목표가 될 수 없는 이유 — 채권시장과 실물경제

    주가가 오르면 소비가 늘어야 한다는 건 경제학 교과서의 기본 명제입니다. 주가 상승이 가계 자산을 늘리고, 그게 소비 심리를 끌어올린다는 자산 효과(wealth effect) 이론이죠. 여기서 자산 효과란 보유 자산의 가치가 올랐을 때 사람들이 더 부유하다고 느껴 지출을 늘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4월 지표 기준으로 생산·소비·투자가 동시에 감소하는 트리플 약세가 나타났고,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4만 명 줄어 17개월 만에 감소로 돌아섰습니다(출처: 통계청). 소비는 3.6%, 투자도 3.6% 줄었습니다.

    이유는 앞서 말한 댐 구조 때문입니다. 돈이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가지 않으니, 채권시장에 자금이 부족해지고 금리가 오릅니다. 미국 10년물 금리는 작년 5월이나 지금이나 4.4%로 같은데, 한국만 2.7%에서 4.1%로 상승한 건 외부 요인이 아니라 국내 자금의 쏠림 때문이라는 해석이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BBB- 등급의 한계기업 회사채 금리가 10%를 넘어선 건 이미 기사로 나왔습니다. 한계기업이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기업을 뜻하는데, 금리가 10%를 넘으면 이들은 자금 조달 자체가 막힙니다. 제가 직접 이 숫자를 확인했을 때 솔직히 좀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단골 백반집 사장님이 버티지 못한 이유가 숫자로 보였거든요.

    그렇다면 지금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주체는 누구냐는 질문이 남습니다. 개인은 빚으로 주식을 사고 있고, 외국인은 환율이 오르는 나라에 채권을 사지 않으며, 기관도 이미 증시에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리밸런싱을 통해 주식을 팔고 그 자금이 채권시장으로 흘러가야 금리가 안정되고, 금리가 안정돼야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늘고, 그게 소비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진다는 논리는 꽤 명확합니다. 이렇게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증시 자체를 더 끌어올리면 자산 효과가 결국 실물로 퍼진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전자 쪽이 더 설득력 있다고 느낍니다. 주가가 세 배 오르는 동안 백반집이 문을 닫는 현실을 제 눈으로 봤으니까요.

    원/달러 환율이 17년 만에 최고 수준인 1,540원대를 오가는 것도 이 맥락과 연결됩니다. 고환율이 수출을 도왔던 건 일본과 가격 경쟁을 하던 시대의 이야기이고, 지금처럼 HBM 같은 기술 독점 품목이 수출을 이끄는 구조에서는 환율이 올라도 수출 물량이 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입 물가가 올라 소비를 갉아먹고, 기업 마진을 압박해 투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각 부처가 경쟁하듯 증시 부양책을 내놓는 현재의 중구난방 방식보다, 거시 경제 전체를 조율하는 사령탑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저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중국 2015년의 주가 62% 폭락, 일본 1990년대 닛케이 고점 회복에 34년이 걸린 사례는 숫자만 떠받치는 부양책의 결말을 잘 보여줍니다.

    • 자산 효과(wealth effect) — 주가 상승이 소비 증가로 이어진다는 이론. 현재 한국은 역작동 중
    • 채권시장 자금 부족 → 국채 금리 상승 → 한계기업 회사채 금리 10% 돌파 → 한계기업부터 자금난
    • 고환율 → 수입 물가 상승 → 소비·투자 동반 위축 (기술 독점 수출 구조에서는 수출 증가 효과 미미)
    • 6월 22일 국민연금 1조 원 매도 기사 → 다음 날 코스피 9.99% 하락, 역대 5위 낙폭
    요약: 지수 부양이 목표가 되면 자금이 실물로 흐르지 않고, 금리·환율·소비가 동시에 악화되는 역설이 심화됩니다. 실물을 살려야 주가가 따라오는 것이지, 그 순서가 뒤집히면 중국·일본의 전례를 따를 수 있습니다.

    폐업 안내문 앞에서 느낀 그 민망함을 오래 기억하려 합니다. 저도 돈만 생기면 소비 대신 주식 계좌에 넣으며 댐에 물을 보태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요. 국민연금 리밸런싱이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채권시장으로 자금을 돌리는 방향으로 마무리되길 기대하지만, 그 과정에서 변동성이 커지면 레버리지와 신용융자를 쓴 개인들이 반대매매로 퇴출되는 일도 늘어날 것입니다. 코스피 숫자만 볼 게 아니라, 내 주변의 폐업률과 이자 고지서와 취업 공고 수를 함께 보는 습관이 지금 시점엔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aDM57YWzSGE&t=291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