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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가가 오르면 환율은 내려간다. 지난 40년 동안 한국 금융시장에서 법칙처럼 통하던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코스피는 8,000선을 넘보는데 달러·원 환율은 1,500원 근처를 맴돌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달 태국 여행을 준비하다가 바트 환율 앞에서 멍하니 계산기만 두드렸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 막연히 '달러 강세 때문이겠지' 하고 넘겼습니다. 알고 보니 그 이유부터 틀렸더군요.

    코스피 환율 역설 (소거법, 국민연금, 리밸런싱)
    코스피 환율 역설 (소거법, 국민연금, 리밸런싱)

    달러 강세도 금리차도 아니었다 — 소거법으로 용의자를 지운다

    환율이 오르면 가장 먼저 들려오는 설명이 두 가지입니다. "달러 강세 때문이다", "한미 금리차 때문이다". 솔직히 저도 그 두 가지를 거의 정답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달러 인덱스(DXY)부터 보겠습니다. 여기서 달러 인덱스란 유로·엔·파운드 등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상대적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재작년에는 이 수치가 110에 근접했는데, 지금은 99 수준입니다. 달러가 오히려 10% 가까이 약해진 셈인데 원화는 왜 1,500원대를 이탈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달러 강세는 용의자에서 지웁니다.

    한미 금리차도 마찬가지입니다. 2025년 5월까지는 우리나라 10년물 국채 금리가 2.7%, 미국은 4.4%였습니다. 금리가 높은 곳으로 돈이 이동한다는 논리로 원화 약세를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10년물 국채 금리는 4.0%까지 올라왔습니다. 격차가 크게 줄었는데도 환율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이 역시 범인이 아닙니다.

    경상수지는 어떨까요. 4월 기준 경상수지 흑자는 282억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출처: 한국은행). 수출로 달러가 쏟아져 들어오는데 원화가 17년 만에 최저라는 건 교과서가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서학개미 문제도 최근 들어 역전됐습니다. 4월에 미국 주식을 7천억 원 이상, 5월에는 1.4조 원 넘게 순매도하며 국내로 돌아왔는데도 원화는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 경상수지: 4월 282억 달러 흑자 — 역대 최대, 범인 제외
    • 달러 인덱스: 110 → 99 하락, 달러 약세 국면 — 범인 제외
    • 한미 10년물 금리차: 1.7%p → 0.4%p로 축소 — 범인 제외
    • 서학개미: 4~5월 순매도 전환, 국내 복귀 — 범인 제외
    요약: 달러 강세·금리차·경상수지·서학개미, 흔히 지목되던 용의자 네 가지를 데이터로 하나씩 지워내면 결국 설명되지 않는 원화 약세만 남는다.

    국민연금이 리밸런싱을 멈추자 생긴 일

    소거법을 돌리고 나면 남는 용의자는 국민연금과 정책입니다. 바클레이즈(Barclays)는 이 지점을 정면으로 건드린 보고서를 냈고, 블룸버그(Bloomberg)가 이를 전 세계에 타전했습니다. 제가 이 대목을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국민연금하고 환율이 무슨 상관이냐 싶었으니까요.

    핵심은 리밸런싱(Rebalancing)에 있습니다. 리밸런싱이란 자산 배분 비율이 목표치에서 벗어났을 때 사고팔기를 통해 원래 비율로 되돌리는 작업을 말합니다. 국민연금은 38년간 국내 주식 비중을 전체 자산의 14.4% 수준으로 유지해 왔습니다. 주가가 오르면 초과분을 팔아 증시를 안정시키고, 주가가 내리면 사들여 바닥을 받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2026년 1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이 원칙이 바뀌었습니다. 명목은 '국내 증시 안정 및 원화 약세 완화'였습니다. 주가가 아무리 올라도 주식을 팔지 않겠다는, 이른바 리밸런싱 유예입니다. 그 결과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은 추정상 30%에 육박하게 됐습니다. 14.4%의 두 배가 넘는 수준입니다.

    문제는 이 공백을 외국인이 채웠다는 겁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포트폴리오별로 국가 비중을 정해 두고 있습니다. 한국 주가가 급등하면 비중이 목표치를 초과하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팔아야 합니다. 국민연금이 리밸런싱을 멈추자 외국인이 리밸런싱을 대신 한 셈입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외국인 순매도액은 100조 원, 대한민국 역사상 전례 없는 규모입니다.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는 과정에서 외환시장 전체 거래 중 외국인 달러 매수 비중이 최고 50%까지 치솟았다는 게 바클레이즈의 분석입니다(출처: Bloomberg).

    요약: 국민연금이 리밸런싱을 유예하자 외국인이 대신 100조 원을 순매도했고, 그 과정에서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면서 환율을 밀어 올렸다는 것이 바클레이즈의 핵심 주장이다.

    외국인은 코스피를 달러로 본다 — 환율이 오르면 팔 수밖에 없는 구조

    제가 이번에 가장 인상 깊었던 관점이 바로 이겁니다. 우리는 코스피를 원화 기준으로 봅니다. 2,500에서 8,800까지 올랐으니 대단한 상승이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외국인은 달러 기준으로 계산합니다. 주가가 아무리 올라도 환율이 함께 오르면 달러로 환산한 수익이 깎입니다. 매도하고 본국으로 돌아갈 때 환전 손실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월가에서는 올해 내내 기묘한 의문이 돌았습니다. '한국 주가가 저렇게 오르는데 왜 원화는 약세지?' 국민연금이 내부적으로 버텨주니 주가는 오르고, 그 오른 주가에 외국인이 기계적으로 리밸런싱을 하며 원화를 팔아치우니 환율도 오릅니다. 주가와 환율이 동시에 오르는 역설이 여기서 만들어집니다.

    저는 태국 여행 준비 때 이 구조를 몸으로 먼저 경험했습니다. 환전 창구에서 바트 환율을 보고 예산을 다시 짰는데, 사실 태국 물가가 오른 게 아니라 원화가 쪼그라든 거였습니다. 원파운드 환율이 2009년 이후 16년 만에 2,000원을 넘었고, 바트화 대비 원화도 눈에 띄게 약해졌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영문도 몰랐는데 지금 돌아보면 구조가 보입니다.

    환헤지(Currency Hedge)도 문제입니다. 여기서 환헤지란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을 막기 위해 선물이나 스왑 등 파생상품을 이용하는 위험 관리 기법입니다. 국민연금이 환헤지를 늘리면 환율을 일시적으로 끌어내릴 수 있지만, 그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 노후 자금에서 현금으로 빠져나갑니다. 환율이 예측한 방향과 반대로 움직이면 손실 규모는 더 커집니다. 노르웨이는 이 문제를 일찌감치 예견하고, 국부펀드가 국내 자산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방화벽을 법제화했습니다. 연기금 규모가 커질수록 정치 개입의 유혹도 커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요약: 외국인은 코스피를 달러 기준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주가 상승과 원화 약세가 겹치면 기계적으로 매도할 수밖에 없고, 이 구조가 코스피 상승과 환율 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역설을 만들어낸다.

    날마다 나오는 증시 부양책 — 카나리아의 입을 막는 건 아닐까

    이 상황에서 정부 정책의 방향이 2분기 들어 눈에 띄게 바뀌었습니다. 초반에는 상법 개정이나 주가 조작 처벌 강화처럼 시장 체질을 바꾸는 정책들이 나왔고, 저도 그때는 진심으로 박수를 쳤습니다. 주주 보호를 강화하고 구조적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방향이었으니까요. 그런데 2분기 이후 나온 정책들은 성격이 다릅니다. 증시에 돈을 직접 때려 넣는 방식입니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은 기존 14.4%에서 20.8%로 상향됐습니다.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도 출시됐는데, 레버리지(Leverage)란 실제 투자금보다 더 큰 규모로 매매 효과를 내는 구조를 말합니다. 10조 원을 넣으면 20조 원어치 주식을 산 것과 같은 효과가 나옵니다. 주가를 더 빠르게 밀어 올릴 수 있지만, 반대로 무너질 때도 그만큼 빠릅니다.

    여기에 은행·생명보험사·손해보험사의 퇴직 연금 365조 원을 대상으로 ETF 실시간 매매를 허용하는 방안까지 검토됐습니다. 올해 1~5월 외국인이 팔고 나간 100조 원과 맞먹는 자금이 언제든 증시로 흘러들어올 수 있게 되는 셈입니다. 단기적으로 주가가 오르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채권 시장에 머물던 자금이 주식으로 쏠리면 국채 금리가 올라갑니다. 실제로 2025년 5월에 2.7%였던 우리나라 10년물 국채 금리가 지금은 4.0%까지 올라왔습니다.

    제가 이 흐름에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환율이 보내는 경고 신호를 인위적으로 차단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환율은 탄광 속 카나리아와 같습니다. 위험이 생기면 제일 먼저 반응하는 지표입니다. 국민연금이라는 원툴 하나로 주가도 올리고, 환율도 누르고, 금리도 잡으려 한다면 시장이 보내는 본래 신호가 가려집니다. 병의 원인을 찾기 전에 증상만 가라앉히는 대증요법은, 내성이 생기면 나중에 훨씬 더 큰 비용을 치릅니다.

    요약: 시장 체질 개선이 아닌 직접 자금 투입 방식의 증시 부양책이 반복될수록, 국민연금 하나가 주가·환율·금리를 동시에 떠받치는 구조로 굳어지고 금융시장의 경고 신호가 가려질 위험이 커진다.

    저는 환전 창구 앞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며 숙소 등급을 낮추던 그날, 제가 틀린 이유를 믿고 있었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달러 강세, 금리차라는 단어를 어디서 줍고는 다 아는 척했는데, 정작 달러 인덱스 숫자 하나 직접 확인한 적이 없었습니다. 내 지갑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문제일수록 남이 정리한 이유를 외울 게 아니라 숫자를 한 번이라도 눈으로 봐야 한다는 걸, 꽤 비싼 비용을 치르고 배웠습니다.

    7월 이후 국민연금이 리밸런싱을 재개하느냐 마느냐가 환율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시점입니다. 코스피 8,000이 유리성이 아니라 단단한 토대 위에 서 있으려면, 시장이 보내는 신호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주가 계좌 수익률만큼이나 환율과 국채 금리의 흐름을 함께 보는 습관, 지금 이 시점엔 그게 가장 필요한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FtPu3XGQ9p8&t=250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