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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상반기에만 103조 원어치 한국 주식을 팔고 나갔는데 코스피는 8,800을 찍었습니다. 저는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습니다. 계좌는 빨간불인데 장 보러 가면 무섭고, 대출 금리 안내 문자는 자꾸 올라간 숫자로 날아오던 그 시기와 딱 겹쳤거든요. 주가가 오르는데 왜 생활은 점점 팍팍해지는지, 그 불일치의 이유를 파고들다 보니 국민연금 얘기가 나왔습니다.

국민연금이 38년 준칙을 깬 이유
국민연금은 2026년 1월 26일, 전략적 자산배분(SAA) 목표 비중을 기존 14.4%에서 14.9%로 올리면서 동시에 리밸런싱을 한시적으로 유예했습니다. 여기서 리밸런싱이란 자산 비중이 목표치를 벗어났을 때 조금씩 사고팔아 원래 비율로 되돌리는 작업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주가가 올라서 주식 비중이 너무 커지면 야금야금 팔아 이익을 실현하고 시장을 안정시키는 방식인데, 이 원칙이 1988년 이후 38년 동안 지켜져 왔습니다.
그런데 이 준칙이 이번에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5월 28일에는 목표 비중 자체를 20.8%로 또다시 올렸고, 기존에 허용하던 ±5%포인트 허용 범위마저 비공개로 전환했습니다. 코스피 8,800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실제로 보유한 국내 주식 비중은 약 30%로 추정됩니다. 원래 목표치의 두 배를 들고 있는 셈입니다.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환율 안정"이었지만, 환율은 1월 당시 1,350원대에서 지금 1,550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IMF 때 우리사주를 떠안으셨던 분이 늘 하시던 말, "환율이랑 금리가 같이 이상하게 움직이면 어딘가에서 무리하고 있다는 뜻"이라고요.
더불어 국민연금 기금위원회 회의록이 4년간 봉인된다는 점도 짚어야 합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회의 후 약 20일이면 회의록을 공개합니다(출처: 한국은행). 국민연금도 그동안 이듬해에 회의록을 공개해 왔는데, 이번 결정은 현 정부 임기가 끝날 무렵인 2030년에야 열람이 가능합니다. 수천만 명의 노후 자산을 다루는 기관이 왜 그 논의 과정을 주인인 국민에게 보여주지 않는지,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자체가 먼저 해명돼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 2026년 1월: 목표 비중 14.4% → 14.9%, 리밸런싱 한시 유예 결정
- 2026년 5월: 목표 비중 20.8%로 재상향, ±5%p 허용 범위 비공개 전환
- 실제 추정 보유 비중 약 30%, 원래 목표의 두 배 수준
- 기금위 회의록 4년 봉인, 2030년 공개 예정
리밸런싱 중단이 채권시장에 남긴 청구서
주식에 몰빵하면 자연히 다른 자산은 줄어듭니다. 국민연금이 국내 채권 비중을 정상 수준인 약 23%보다 낮은 19% 안팎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추정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우리나라 채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이 고래가 사 주지 않으면 금리가 튀어오른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한국 10년물 국고채 수익률은 작년 5월 2.7%에서 최근 4.2%를 돌파했습니다(출처: 기획재정부). 1년 남짓 만에 1.5%포인트 넘게 뛴 겁니다.
저도 당시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 안내 문자가 자꾸 올라간 숫자로 날아오던 게 기억납니다. 계좌는 웃고 있는데 대출 부담은 커지고 마트 물가는 오르고, 그 불일치가 어디서 왔는지 그때는 정확히 몰랐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기업 투자가 줄고, 가계 소비가 위축되고, 결국 내수가 박살 납니다. 코스피가 8,800인데 내수 경기가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국고채 수익률(국채 금리)이란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시장에서 거래할 때 형성되는 이자율로, 시중 대출금리의 기준이 됩니다. 이 금리가 오르면 기업 조달 비용이 올라가고 가계 이자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주가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시장은 주가, 금리, 환율이 동시에 불안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쪽을 억지로 누르면 다른 쪽에서 압력이 새어 나온다는 것, 이게 시장에 공짜가 없다는 말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1990년대 초 일본 사례가 그 선례입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연기금에 국내 주식을 더 사도록 명령했고, 주가는 단기간에 약 40% 올랐습니다. 그러나 외국인이 그 고점에서 차익을 챙기고 빠져나가면서 연기금이 무너졌습니다. 지금 한국 외국인 순매도 규모가 역대 최대인 103조 원이라는 점은 이 흐름과 구조가 닮아 있다는 점에서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평가이익과 실현이익은 다릅니다
국민연금 수익률이 크게 올랐다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저도 처음엔 그냥 좋은 소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국민연금은 주식을 살 때는 자유롭지만 팔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연못 안의 고래가 조금만 움직여도 물결이 크게 일듯, 국민연금이 대규모로 매도에 나서는 순간 주가가 급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평가이익과 실현이익의 차이입니다.
평가이익이란 아직 팔지 않은 자산의 현재 시세와 취득 원가의 차액을 말합니다. 팔기 전까지는 숫자로만 존재하는 이익입니다. 반면 실현이익은 실제로 매도해서 손에 쥔 이익입니다. 국민연금처럼 몸집이 큰 기관은 평가이익이 아무리 높아도, 파는 순간 그 이익이 줄어드는 구조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원래 리밸런싱 원칙은 조금씩 야금야금 팔아서 실현이익을 쌓는 방식이었고, 38년 동안 이 방식으로 국민연금 수익률이 유지돼 왔던 겁니다.
회사 동기가 계좌 인증을 하며 코스피가 오르는데 왜 예금만 하냐고 놀릴 때, 저도 적금을 깨서 지수 ETF에 들어갔습니다. 처음 며칠은 빨간불에 기분이 좋았지만, 그 빨간불이 어디서 켜진 건지는 한 번도 따져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제대로 들여다보고 나서야, 그게 누군가 준칙을 깨면서 억지로 켜둔 불빛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불편함이었습니다.
한 가지 짚어두고 싶은 건, 290조 원 초과 보유나 30%라는 수치는 어디까지나 추정치라는 점입니다. 국민연금이 실제 수치를 공개하지 않아 생긴 공백을 논리로 메운 것입니다. 문제의식과 방향에는 깊이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숫자는 두 달 뒤 나올 공식 발표를 확인하면서 읽어야 한다고 봅니다.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저는 그 숫자보다 38년 준칙이 어떤 이유로 어떻게 바뀌었는지가 더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평가이익: 아직 팔지 않은 보유 자산의 시세 차익, 실질 수익이 아님
- 실현이익: 실제 매도 후 확정된 이익, 연기금 성과 평가의 실질 기준
- 국민연금은 매도 자체가 시장에 충격을 주기 때문에 단기 평가이익은 의미가 제한적
- 운용 성과 평가를 평가이익 기준으로 하면 단기 성과 집착을 유발할 수 있음
오르는 숫자 하나만 보고 안심하려 했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지수가 왜 오르는지, 뒤에서 누가 무엇을 참으며 버티고 있는지는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시장이 보내는 신호들이 서로 엇갈릴 때는 좋은 쪽 신호만 골라서 믿지 말고, 오히려 불편한 신호부터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 제가 이번에 배운 것입니다.
앞으로 외국인 순매수 전환 여부, 10년물·5년물 국고채 금리 추이, 그리고 국민연금이 두 달 뒤 공식 발표할 실제 주식 비중 변화를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지수 하나만 보지 않고 세 개의 시계를 동시에 확인하는 것, 그게 지금 이 시장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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